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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1992 : 미니멀리즘과 표현주의 사이

자유를 찾아가는 새



강성원 (미술평론가)  

 나는 한 작가의 전시서문이 그 작가에게 여하한의 권력에의 의지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작가의 선택으로 나에게 주어진 잠시의 그 자유, 그 자유는 매우 소중하다. 물론 이럴 때 작가와 나 사이에 일단 맺어진 그 관계에 대해 둘 다 이성적인 게임 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이 자유가 진정 자유일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다.
 미술계의 거의 문화적 살인에 가까운 권력게임,나아가 역사 전체의 그 무수한 부조리와 수많은 이름 없는 약한 자들의 죽은 영혼을 유린하는 권력투쟁.거기서 한 마리 작은 새를 자유의 창공으로 띄워보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송심이의 이번 작품들은 어둠 그 자체의 어둠 읽기라고 보여질만한 것을 시도한다. 그녀는 '권력에의 의지'라든가 하는 식의 '권력'이니 정치니 하는 얘기에는 별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 작품을 해석하면서 너무 큰 잣대를 들먹거리고 있지 않나 하는 감도 스스로 없지는 않다.

 그녀에게 회화의 본질이란 거의 절대무에 이르기까지의 자기부정을 시도하면서 그 안에 최후로 남는 삶의 꿈틀거림, 그것이 있나, 없나를 아주 여리고 예민한 손짓으로 더듬어 보고자 하는 한 의식의 떨림의 표현이다.
 형식적으로 회화의 자기부정이란 방법론을 택하고 있고, 그 부정이 긍정적으로 온전히 순결하게 드러내고자하는 것이 인간들의 애쓰다 남은 삶의 결이 되고 있기에 그 순수성의 결합은 미니멀한 방법상의 절대주의에 리얼리티의 한 반영이라는 성격을 부여한다.
 자기 집 지하실 창고벽에 도공이 아무렇게나 발라놓은 페인트 칠, 그 위에 탁본 뜨듯 종이에 먹을 입혀 나갔다는 이번 작품들은 결국 도공의 페인트칠 자욱이나, 그 자욱이 떨어져 나간 형태,혹은 그 위에 물이 새어 흐른 자욱들을 또 다른 평면 위에 옮겨본 것들이다.
 어두운 지하실 벽에 물먹인 한지를 대고, 그 위에 수차례의 먹의 농담의 실험을 통해 끈질기게 지하실이라는 자연(생의 조건)이 역사로 간직하고 있을 그 기억들을 가능하면 정교하게 떠내고자 한 의지, 그것은 자유에의 의지다.
 사소하고 왜소한 존재들에도 자기만의 풍부한 삶이 있고,독자적인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권력적이고, 그래서 타자를 억압하는 모든 존재들의 가치와 본래적으로 동등한 실존의 가치를 지닌다.
 그녀가 이번에 하고자 한 작업은 이같이 사소한 현실, 기억, 흔적들이 지닌 존재에 리얼리티를 주는 일이다. 그 존재들을 빛 속으로 돌출시키는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 묻어나는 더 깊은 어둠의 무게로 그 리얼리티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영혼의 계곡 어둠 저 편으로 룰려 나가는 그 자유에의 전망을 감지해 보는 일이다.

 그녀는 얼마 전 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매우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그려서 무엇인가를 재현하거나 표현하여 나온 회화성에 무척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답답한가. 그것은 페인팅한다는 것은 모종의 관념이나 인습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페인팅하지 않는 회화-그것은 모든 기왕의 표현의 한계를 넘는 어떤 표현을 의도하고자 선택한 방법이다. 우리의 의식, 정신, 물질의 양태가 그것을 그려낼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기에, 예술도 페인팅 상태를 넘어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송심이의 작업들은 우리 화단에서 아마도 현재 가장 순수한 형태(권력의 의지가 배제된 회화 방법론의 모색)의 이런 예술의식의 탐색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보인다.

 그녀의 이런 작업들이 보다 힘찬 부정의 소리를 간직해 예술을 빙자한 모든 (예술적) 권력투쟁을 그 본질대로 인식케 할 수 있다면... 작은 새의 아나키즘, 그 자유가 가장 최고의 예술권력 자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만이라도 우리 미술계가 현실권력으로 부터의 해방구일 수 있다면... 송심이의 작품들은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들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개인전 도록에서   1993.10

 

 

 

 

2020. 12. 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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